박노자의 미아로 산다는 것을 읽었다.
미아로 산다는 것 편안함의 대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후기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을 ‘액체 근대’라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의 풍경은, 대중의 새로운 가난과 개개인의 고독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액체 근대’란 모든 것이 흐르는 물처럼 너무나 빨리 바뀌어 어떤 장기적 ‘관계 맺기’가 불가능한 상황을 일컫습니다.
오늘날은 ‘착취’와 함께 ‘소외’가 새로운 모습의 무산자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의 핵심일 것입니다. 옛날과 달리 노동자’들’이 함께 공장주에 맞서기보다 각자가 불안과 가난, 고독의 무게를 알아서 혼자 감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각자도생으로 서로 경쟁하면서 말입니다.
자본과, 자본을 위한 국가가 수면 시간 이외에 우리의 모든 시간을 차지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는 이 디스토피아 같은 세계에서 ‘혁명’이란 결국 나와 우리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가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는 것은, 아마도 현재로서 가장 혁명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500여 년 전 동양철학사상 가장 급진적이며 개성적인 사상가라고 할 이지(이탁오)는 동심, 즉 주류의 의식이 ‘나’에게 주입되기 전의 본래 진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오늘날 이 외침은 더 절실하게 들립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우리 중에 누가 학벌이 더 좋고 실력이 더 있느냐’ 같은 비교 의식이 아닌, ‘우리가 같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내가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가장 혁명적인 대인태도일 것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일개 동물에 불과하지만 다른 동물들과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성장 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죠. 통상 인간의 인생에서 약 5분의 1은 성장 기간에 해당됩니다. 또 5분의 1 정도는 정상적으로 혼자 살아가기 힘들 수도 있는 노년기입니다. 즉 인생의 5분의 2는 의타적일 수 밖에 없는 거죠. 이게 바로 인간의 ‘기본 조건’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폭풍노도 속에서 ‘가정’은 점차 침몰하고 있습니다. 수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혼자’가 기본인 새로운 세대가 탄생했습니다. 그렇게 개개인의 인간적 접촉면이 줄어드는 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의 사회’, ‘따뜻한 사회’ 입니다. 외로운 사람이 어디에선가 눈물 섞인 고백을 쉽게 할 수 있는,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 아프고 늙어도 그를 돌봐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는 포괄적인 보편 복지가 기본이고 필수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사회로 가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한 ‘헬’ 이 될 것입니다.
미아로 산다는 것 남아 있는 상처
성적 충동에 대한 억압은 자연스러운 걸까요? 또한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그걸 통해서 신체의 자연스러운 욕구들을 늘 억제할줄 아는 ‘유순하고 성실한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셈이죠.
인간을 생활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의식주와 잠 그리고 섹스입니다. 각 사회의 성 풍속도는 해당 사회의 ‘성’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해 뭐라고 판단하게 될까요?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억압적인 방식으로 고강도의 장시간 학습 노동에 적응 합니다. 이는 자본에 ‘유순한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죠. 이후 한국인들은 개인 시간도 별로 없이 자본에 종속되게 됩니다.
본래 한국 남성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뭘까요? ‘군인’도 있고(“군대 갔다 와야 남자다”) ‘국민’도 있지만, 일차적인 것은 바로 ‘가족 부양자’ 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차적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사람’은 ‘남자 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가장이 ‘처자식’의 의식주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아내의 가출도 절대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를 포함하여 남성의 모든 사회적 관계의 전제조건은 바로 ‘경제력’이니까요. 이건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한국 사회의 철칙 중 철칙입니다.
미아로 산다는 것 한국, 급級의 사회
자기계발서의 세계에서는 만인이 만인의 경쟁자입니다. 이런 경쟁 구도에서 최고의 무기는 속 생각의 은폐와 위선 그리고 ‘관계 관리’와 타자의 도구화고요. 최종 목표는? 바로 ‘부자 되세요’ 입니다.
방 모씨처럼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제 정신인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괴물들을 퇴치하고 방지하려면 피라미드를 수평화해야 합니다. 대학 평준화, 의료 공공화, 재분배 시스템을 통한 재산 격차의 억제 등, ‘헬조선’을 벗어나려면 이 길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