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리뷰 2 – 하지현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두번째 시간이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 유동하는 마음의 지형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왜 사는지 모른채 허우적거리며 휩쓸려가는 일이 잦다. 그러다보니 직접적 원인을 감히 직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 주위를 깨끗하게 하고, 정돈하는 대응으로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노력만 하게 되는 것이 현대인이 갖고 있는 강박증의 핵심이다. 이런 과잉 대응은 일단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기게 해준다. 마치 연하디 연한 부드러운 속살을 단단한 껍질로 보호하는 갑각류 같다.

갑각류의 껍질이 두껍고 단단할수록 속살은 더욱 부드럽지만, 그 대체의 무게는 무거워지고 움직임은 둔해져서 포식자에게 잡힐 위험은 도리어 높아진다. 그리고 삶에 부딪혀 굳은살이 박이고 근육이 탄탄해질 기회를 잃는다. 어느 날 강박에 사로잡혔다면 그 증상을 없애려 하기보다 실제 내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려는 불안의 근원을 찾으려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는 것인데도 완벽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던 속박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속박의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외로움은 혼자서 극복하려는 의지로 인해서가 아니라, 촘촘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으로 사라진다. 고립된 상태로 남아 쿨한 채로만 지내려하면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집단과 개인 사이의 현명한 진자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만일 혼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면 이런 저런 생각과 앞날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고 생산적인 일을 할 엄두를 못내기 쉽다. 그러나 적당히 쉬는 동시에 또 적당히 일을 할 수도 있는 공간인 카페에 나와 앉아 있으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며서 자기 일을 해나갈수 있다. 일종의 ‘평행놀이 parallel play’와 같다. 

인간 행동은 두 가지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는 좋은 것을 갖고픈 욕망 또는 호기심에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고 또하나는 위험한 것을 피하고 안전을 추구해 생존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게임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아 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현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것,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현실 세계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현실을 재미있게 느끼도록 해주려면, 현실에서 튕겨나가게 만든 문제를 찾아내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게임이란 부풀어오른 풍선의 튀어나온 한 부분일 뿐이다. 무작젖ㅇ 게임을 못하게 위에서 누르면 풍선의 다른 곳이 튀어나올 뿐이다. 부푼 풍선의 바람을 빼는 일부터 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변화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팩트를 봐야만 한다. 이를 정신분석에서는 직면 confrontation이라 한다. 팩트 제시를 폭력이 아닌 현실 인식을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할 경우도 많다. 위로를 바라는 마음은 공감하지만, 팩트를 제시하는 것을 무조건 폭력행사와 동일시하면서 계속해서 현실부정에 빠져 아주 낮은 확률의 행운이 찾아오기만을 바라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 마음을 위한 액션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접촉 가설을 제안했다. 일단 만나서 소통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하다보면 그와 내가 얼마나 비슷한지 알아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강함이란 자신이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증상을 없애려 하기 앞서서 먼저 자신이 정상의 범위를 너무 좁게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조금씩 이를 넓혀보려는 시도를 하는것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눈으로 보면 웬만하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이 더 많다. 완벽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의 갑옷을 먼저 벗어야 한다. 그런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고, 내 삶의 경쟁력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걸 확인한 다음에 차근차근 정상의 범위를 넓혀본다. 이 정도 게을러도, 이정도 무질서해도, 요 정도만 노력해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고, 도리어 나도 편하고 남도 편하고, 결과물 역시도 좋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짜증이 나는 일이 생기면 자책을 하기보다는 그걸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나라는 컵이 한계까지 차올라서 넘치기 전이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말이다. 이떄에는 무리해서 계속 나아가기보다 일단 멈추어야 한다.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프레드 허슈는 70년대 영국사회를 분석했다.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되자 많은 이들이 도리어 결과에 실망하는 풍요의 역설을 그는 ‘성장의 사회적 한계’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경제 성장이 일정 단계에 이르러 대부분이 먹고살 만해지면 한정된 자원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물질적 풍요보다 훨씬 중요한 욕구가 된다.

모두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관성대로 나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 나오며

이제 나 한사람의 생존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자아를 완벽하게 발달시키겠다는 욕망이 의미 없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나하나 살아남는다고, 더 강해져서 옆 사람을 누른다고, 영속하는 행복은 오지 않는다. 완벽할 필요 없음을, 이길 필요 없음을, 욕망의 적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깨다는 것이 우선 해야 한다. 그다음 나의 결핍, 부족함, 모자람을 인정하면서 공감의 문을 열어야 한다. 내 결핍을 인식해야 타인의 결핍에 대해서도 역시 그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공감과 연대의 필요성이 발생한다. 더 나아가 느슨한 관계망의 확장과 세상과 타인을 향한 대가 없는 이타적 호혜평등성이 개인에게 긍정적 가치와 삶의 의미를 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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