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는 한국인의 마음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병리학적 징후들을 통해 그 마음에 켜진 위험신호가 어디에서 온 것이고 그것이 어떤 상황과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 그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의미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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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 마음이 위험하다
그들의 핵심적 문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질 일도 없다. 이들의 정신승리의 기제는 ‘지지 않는 것’이다. 한번 붙어서 무승부나 동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승부를 겨루지 않음으로써 지지 않는 것이다. 타석에 서보지 않은 채 스윙 연습만 하는, 가능성 있는 드래프트 1순위의 4번타자다.
타석에 서서 헛스윙을 하거나 땅볼을 쳐서 아웃이 되면 부끄럽고 속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뭘 더 훈련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이런 경험치가 쌓이면 실력은 결국 향상된다. 경험을 통한 성장이다. 하지만 실패가 부끄럽고 아파서 경험을 피하기만 하면 당연히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닌 상태’, 가능성만 놓고 보면 이길 수도 있는 상태를 유지해 정신승리를 고수한다.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만은 편해진다.
지금의 10대는 부모의 과도한 칭찬을 받으면서도 적당한 좌절을 경험하지 못하며 자란 탓에 그대화된 유아적 자존감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결국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부를 숭상하고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 타인의 적절한 비판을 부적절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강한 분노로 반응한다. 이런 유의 반응만 하면서 자기만의 환상 속에서 자족한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내면은 불행하다. 현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이 실제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정도의 현실 인식 능력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 마음의 체력_더이상 참고 싶지 않다?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의 성숙을 여러 가지로 정의했다. 그중 하나가 지연된 욕구 충족을 견디는 것이다. 한마디로 참을성이다.
기다릴 줄 알고, 불편한 것을 견디는 힘이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는 명제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 불편함을 줄이는 것은 필요하나, 지나친 편리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버리면 그건 독이된다.
맷집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마음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애매한 상황이 지속됐을 때 불안해져서 성급한 결정을 해버린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결정을 한 것을 후회하기 쉽다. 이렇게 쉽게 결정하고 후회를 하는 것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어떤 결정이 자신에게 좋은지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사실은 차라리 어떻게든 맷집을 갖고 견디는 것이 정답이다. 꽤 많은 일은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애매한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마음의 힘이 바로 맷집이기에 맷집은 소중하다. 하지만 세상은 맷집을 무장해제하고 본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보사회를 환영하던 우리가 어느 정보 과잉의 덫에 걸린 형국이 된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이제 그만!”이 정도면 됐어’라는 마음의 브레이크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많이 알고 있다. 결과에 대한 만족은 더 많은 정보를 통해 오는 것도, 오랫동안 고민한다고 오는 것도 아니다. 고민과 정보 처리를 위해 쓰는 시간과 노력 모두 비용으로 여기고, 사안에 따라 적당한 정도의 노력과 시간만 들여 마음의 경제를 흑자로 운영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선택의 결과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특별한 이해관계나 갈등이 없는 남이 나를 미워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내게 능력이 있다’ ‘내가 뭔가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것을 갖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다. 부러워하는 마음이 미워하게 만들고 “네가 뭔데 저런걸 가져?”라는 시기심이 발동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기보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이 기시미 이치로가 소개한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신분석가 비브링은 우울증의 정신역동적 원인을 설명하면서 자아가 되고 싶은 이상적 수준과 현실의 격차가 너무커서 그 사이를 도저히 메울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개인은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내가 혼자 설정한 개인의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보다 주변과 비교해서 평균에 속하거나, 평균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긴장이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군대 가는 아들에게 대부분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딱 중간만 해라. 그래야 안전하다.”
요즘은 한 번의 실패가 주는 불이익이 과거에 비해 훨씬 클 뿐 아니라, 집단의 룰에 따라 내려지는 결정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모든 것을 개인이 하나하나 결정하고 그 결과도 책임져야 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니 복수의 선택지를 두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에너지가 덜 드는, 항상 해온 방식대로만 선택을 하는 경향성이 강해진다.
일관된 경제적 궁핍이 아니라도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마음 씀씀이가 달라지는 것은 인간의 행동이 뇌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느슨함을 갖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사치라고 부를 만하다. 현대 사회에서 생존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은 대단한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치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살다보면 가끔씩 찾아오는 큰 보상이 뒤따르는 모험에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얻을 기회 역시 갖지 못한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 마음의 밀실_고독은 좋지만 고립은 싫다!
만일 사무실 벽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자신을 멋지고 근사한, 문화적으로 쿨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기대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바, 긍정하는 것,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주변을 꾸미고 정돈하는 것을 좋아한다.
프로이트는 성인의 중요한 심리적 과제를 ‘일과 사랑’이라고 했고, 에릭슨은 초기 성인기의 발달 과제를 ‘친밀감 대 고립감’이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사회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일’을 통해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았다. 또 부모에게 받기만 하던 사랑이 아닌 다른 종류의 사랑으로 타인을 만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내 것을 남에게 주는 일방적 이타성을 경험하는 ‘사랑’ 또한 매우 중요한 심리적 과제라고 했다. 에릭슨은 가족이 아닌 남과 가깝게 지내면서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 지를 실험해보고 그걸 잘 해내기 위해 친밀감을 경험하고 익히는 것이 초기 성인기의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그게 잘 되지 않으면 고립감을 느끼면서 사회로부터 소외됐다고 여기며 항상 외롭고 우울한 심리적 태도를 갖고 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