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기억에 남는 문장 모음

윤대녕 작가를 좋아합니다. 도자기 박물관의 기억에 남는 구절을 기록해봅니다.

도자기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이름을 밝히면 어찌어찌 당신 기억에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당신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더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나는 당신한테 각인(?)된 나에게 대해 여전히 자신 없어하고 제풀에 초라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 특유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에다 아무도 쉽게 자기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방어적인 인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엿보이는 따뜻함이라든가 나약함이라든가 부드러움이 있었지요. 그래서 나는 여자의 직감으로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두려워하면서도 늘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는, 결국 웅크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고백하자면 나는 그 어둡게 웅크리고 있는 당신의 모습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의 모습에서 다름 아는 나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란게 존재한다면 그 시작은 이렇듯 늘 부산스럽고 어설픈 게 아닐까요? 거기에 설혹 실수와 오기와 슬픔 따위가 개입돼 있더라도 그게 바로 사랑의 시작이 아니던가요? 어쩌면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봄날의 술기운 속에서 어느덧 당신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어떤 보상으로도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내게 필요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인생에서 나쁜 경험이란 없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나는 그 불안하고 막막한 시기의 관물을 통과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늘 그래왔듯 나는 현재에 뜨겁게 머물고 싶고 그것이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라는 것을 알지만 지난 일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도자기 박물관 – 반달

“곁에 사람을 두고 살아야 그게 진짜 삶이란다. 부디 순정한 사람이 네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구나. 너도 그 사람 곁에 늘 함께 머물러야 하고.”

삶의 길을 잃고 헤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덧없는 꿈이나 고독한 환상이니 화염 같은 고통이니 하는 말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잃었었기 때문에 어쩌면 사랑이 가능했고 가까스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알던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말이다.

도자기 박물관

케이블카를 차고 권금성에 다녀와 대포항의 횟집에 모여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는 동안 그는 이쯤에서 자신의 인생에 모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도자기 박물관 – 구제역들

나이가 들어 좀더 심각해진 것은 급기야 삶이 병역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멀리 회사 건물만 눈에 들어와도 아찔하니 숨이 막히고 상사나 동료 직원의 얼굴을 대하는 것조차 점점 꺼려졌다.

제멋대로 왔다가 또 제멋대로 가는 게 사람이잖아.

형도 알고 보면 나와 별로 다를게 없잖수. 그래도 형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뒀으니 일단 로또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 아뉴, 그게 그렇게 만만한게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세속적인 집착과 속물적인 근성이 없으면 가정을 꾸리기 힘들더라 그런 말이외다.

도자기 박물관 – 검역

그 어떤 심정의 여유나 주변머리조차 없는 됨됨이 탓에 그는 남들처럼 소풍 다녀오는 심정으로 슬쩍 바람 한 번 피우지 못했다.

도자기 박물관 – 문어와 만날 때까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일 년이 좀더 지난 어느 봄날 오후였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주말이었고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 나는 이제 서둘러 결혼이라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날마다 공중에 발을 헛디디며 사는 느낌이었고 누군가와 동화되지 않으면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찾아와 있을 때였다.

도자기 박물관 – 통영-홍콩 간

비록 상처가 되더라도 만나서 서로 고통을 나누는 편이 나는 그나마 인간적이라고 생각해. 물론 그것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힘든 일이지만.

누가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는 대개 자신이 호의를 베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갖고 있는 일종의 이기적인 편견에 속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은 자기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쉽게 이해하려고 들지.

이맛살을 찌푸린 채 그애는 자신이 들고 있는 커피 잔 속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이해란 낱말은 인간관계에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수학이나 논리에서 개념을 파악할 때 필요한 용어지.

그럼 이해를 통하지 않고 서로를 어떻게 알 수 있죠?

상대에 대한 자족적인 호의나 이기적인 편견보다는 자기 고백적 솔직함이 서로의 마음이 접근하기 위한 바탕이 돼야 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이 그토록 소통을 원한다고 생각하세요?

혼자라는 건 존재로서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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